Music/Show Review

[스크랩] 20090411 존 로드 콘체르토 April 관람기

DJ-BURN 2009. 4. 13. 14:29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약 15년 전쯤 됐을 거다. 내 인생 첫 콘서트인 넥스트의 공연에 다녀오던 길에 버스 정류장 근처에 붙어있던 딥 퍼플 내한 콘서트 포스터. 마침 바로 그 날 넥스트 콘서트 앙코르 곡으로 연주되던 'Smoke On The Water' 를 'Enter Sandman' 아니냐고 하던 나를 비웃던 친구는 '기타리스트가 바뀐 딥 퍼플은 의미가 없다' 며 혀를 끌끌 찼다.

 

 PC통신에 누구인지 모를 사람이 올린 해외 록스타 인터뷰 번역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보며 감격해 하던 그 때, 임진모의 책에 나오던 음반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가 음반을 찾아다니던 그 때, 나는 때 마침 기념앨범으로 나온 'In Rock'을 샀고, 'Soldier Of Fortune' 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샀고, 'California Jam' 을 샀고, 'Burn' 을 샀다. 그리고 내가 빠져든 건 글렌 휴즈의 답답함을 모르는 고음과, 리치 블랙모어의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기타 솔로, 그리고 물결이 넘실대는 듯한 감격적인 솔로를 들려주던 존 로드의 해먼드 오르간이었다.


 이건 좀 뜬금 없다. 딥 퍼플은 비교적 자주 방문한다고 하지만 존 로드는 더 이상 거기에 없다. 그런데 존 로드가 자신이 만든 곡을 가지고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한다. 영국에서는 가능하다. 일본에서도 가능하다.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냐? 존 로드가 우리나라 클래식계에 꽤 이름이 알려져 있나? 어떻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지? 이유는 어쨌건 존 로드를, 소리가 울리면 계단 좌석 전체가 진동해서 공연 전에 물을 빼지 않으면 방광염 환자를 속출시키는 체조경기장이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볼 수 있다면, 가야 한다.

 

 친절하게 예상 세트리스트까지 올라왔다. Concerto For Group & Orchestra의 3악장 전곡... 리치와 이언 페이스가 없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리치의 오케스트라 멤버들을 벙찌게 만들고 흑인도 헤드뱅잉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그 솔로, 이언 페이스의 앞뒤 안가리고 후드러 갈겨대는 솔로가 없이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기타고 드럼이고 다 빼고 클래식 악기로만 채울 셈이냐? 불안하다. 솔로가 없으면 이 연주는 반은 무효다. 'Child In Time' 은 또 뭐냐. 아... 머리 아파. 대체 무슨 생각이냐!

 

 공연장에 가니 다행히 기타앰프가 있고 드럼이 있다. 연주자는 일천한 지식 덕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오케스트라가 먼저 입장해서 조율을 하는데 익숙한 1악장. 아... 쌀 거 같아... 존 로드가 등장. 머리만 새하얘졌을 뿐 그 장난기 어린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 목소리에 실리는 썰렁한 농담도 여전. 연주가 시작된다. 아, 이게 웬 횡재냐... 분위기가 무르익고 기타솔로가 나온다. 아... 리치... 니 솔로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어... 니 마누라는 니 기준에만 이쁜거야... 빨리 세종문화회관으로 와...

 2악장은 손질이 많이 더해졌다. 남자 보컬은 록적이라기 보다는 팝적이다. 어차피 이언길런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모범생으로 만든 2악장. 보컬의 역량을 단정짓기에는 부족하다.

 3악장 중반에 이언 페이스가 솔로를 끝마치고 땡땡이를 두드릴 때 관중들은 왜 박수를 쳤을까? 지겨운 거 끝나서? 그럼 난 기립박수다.


 1부 끝났다. 1969년의 Concerto는 멤버들의 넘쳐나는 역량을 최대한 고려한 차원에서 만들었다면 2009년의 그것은 뭐랄까 예전의 그것만큼 록 부분을 담당한 멤버들에게 시간을 주지도 않았지만 처음부터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리치의 경우) 스튜디오 앨범에서 경험하지 못 했던 그의 압도적인 연주를 보여주고 들려준 그 강렬함을 생각하면,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 중에서도 최상의 연주를 들려준 그 연주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더군다나 투어 정규 멤버로서 긴 연습기간과 많은 공연을 함께 한 것도 아니고 단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짧은 기간의 연습 시간만이 주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애초에 리치나 이언 페이스만큼의 인상과 충격을 기대했던 것 자체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한 야동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자.

 

 존 로드의 입에서 딥 퍼플 멤버들의 이름이 나온다. 열광한다. 그렇게 2부의 시작을 알린 곡은 'Pictures Of Home' 클래식 전주로 시작하여 익숙한 그 멜로디가 들려온다. 곡의 반환점을 알리는 울림 좋은 베이스에 이은 드럼... 오늘 록 솔로는 포기해야하는건가? 우선 원곡에 충실해 주면 안 될까? 'One From The Meadow' 가 나오고, 드럼 인트로로 시작된 'Bourre', 존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Pictured Within', 바하와 같은 시기의 바로크 작곡가의 곡으로 자신의 맘에 들어 인용하게 되었다는 'Teleman Experiment', 슬픈 곡으로 Sam Brown과의 공작(共作)이라는 설명으로 시작된, 폴란드 출신 여성 보컬의 나즈막한 한숨 소리로 마지막을 장식할 때까지 숨 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Wait A While', 그리고 정교하고 단단하게 짜여진 구성을 보여준 'Gigue' 까지 공연은 이어진다.

 

 밖으로 나가버렸던 존 로드가 다시 나온다.

 

 '이 곡은 오늘 연주할 곡들 중 유일하게 제가 쓴 곡이 아닙니다' '리치가 곡을 쓰고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뭐겠나? 'Soldier Of Fortune'. 첫 내한공연에서는 아리랑을 연주했다더니 역시나 팬서비스 아니겠는가? 전주에서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 이건 존 로드에게는 좀 씁쓸한 일 아닐까? 하지만 연주가 끝나고 2층에서 봐도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짓는 존 로드. 다행이다. '좋은 곡을 써준 리치와 데이비드에게 고맙다'

 

 '다시 예전 밴드의 음악을 하겠습니다' 'April' 인가? 키보드 전주가 나오는 순간 난 소리를 지를테다. 아니다 'Child In Time' 이다. 이제 딥 퍼플도 하지 않는 선곡을 하다니. 기타와 오르간 배틀은 좋다. 참 좋다.

 

 곡이 끝나고 몇몇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친다. 하지만 아직 공연을 끝나지 않았을텐데? 퇴장했던 존 로드가 남녀 보컬을 대동하고 나타나서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퇴장하기 시작한다. 어! 끝이네?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April' 은 뭐냐? 'April' 을 연주하겠다는 게 아니라 집에 달력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날짜 알려준 거였냐? 암튼 끝이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같이 했던 사람들과 포옹하고 악수하고 박수갈채를 유도하며 2시간 넘는 공연을 활기차고 유연하게 이끈 존 로드는 아주 즐거워보였다.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 사는 정체된 음악가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또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는 모습이 참 좋다. 특이했던 건 해몬드 오르간은 맨 눈으로 피아노는 안경을 착용하고 연주했다는 점이다. 해몬드 오르간은 딥 퍼플 시절의 곡들이 주로 있어서 수 많은 투어 중에 연주했기 때문인가? 암튼 오르간을 훓고 쥐어짜고 애무하는 존 로드의 모습은 아직 건재하다. 역시 진짜 록커는 나이를 먹지 않는구나.

 

 후에 안 일이지만 남자보컬은 Steve Balsamo라고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예수 역을 맡았던 사람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 부자연스럽다. 똥싸다 보면 절로 종교에 의지하고픈 마음을 갖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생각이 나는 매운 낚지볶음이 이언 길런의 목소리라면, 발사모의 목소리는 먹으면 입에서 녹듯이 사라지는 회 같은 느낌이랄까. 고음 처리나 감미로움에선 현재는 물론이고 전성기의 길런을 능가할 수도 있겠다 하겠지만 격정적으로 몰아부치는 면에서, 특히 딥 퍼플의 곡들에서는 길런을 추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타와 드럼 소리는 뭐라고 해야 하나, Plugged였지만 어쿠스틱하고 날것의 맛이 물씬 났었던 예전(특히 1969년의 Concerto For Group & Orchestra)의 소리들에 비해 너무 잘 다듬어진 소리가 났다. 연주로만 보자면 나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1부에선 절망 수준까지 도달했었지만 2부에선 만족스러운 기량을 발휘했다. 드럼이 중간에 호응을 유도하던 부분에서는 절로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 자존심도 없는 나란 인간.

 

 공연을 위해 만든 장소라 소리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음악 하나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데 공연장의 역할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려준 공연이었다. '주다스 프리스트가 여기서 공연했다면 졸도할 사람이 몇 배는 늘어났을텐데' 하는 생각이 몇 번이 났는지 모른다. 부도칸처럼 애초에 잘 만들어놓지 않을 바에야 경기장에선 경기나 봐야지 언제까지 관중들의 떼창이 열악한 공연장 환경을 덮을 수 있겠나? 멀쩡한 강바닥 판다고 삽질 그만하고, 개그맨들 일자리 뺐을 궁리는 그만 좀 하고, 록 그룹도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이나 좀 지었으면 한다. 명색이 한 나라 대빵이면 업적 하나는 남겨야지.

 

 

 

 

 

 

 

 

 

출처 : 주다스 혹은 새버스
글쓴이 : Gettin Tight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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